추진 사업
위치: 1500 13th St. NW, Washington DC (Logan Circle 15)
조선과 대한제국의 정부가 1891년부터 1905년까지 주미공사관으로 사용한 곳
워싱턴DC에 조선왕의 공사관이 설립된 때는 1888년이었다. 정식 명칭은 '대조선주차미국화성돈공사관(大朝鮮駐箚美國華盛頓公使館)'이다. 최초의 주미공사관 부영이 1888년 1월 17일 대통령 그로버 클리블랜드(Grover Cleveland)에게 신임장을 제정한 후 워싱턴 시내의 한 건물(1513 0 Street NW)을 임대해 사용했다.
위치: 워싱턴DC 주미한국대사관 홍성사관 (2320 Massachusetts Ave. NW, Washington DC)
최초의 미주 시민권자가 한국독립운동가로서 한미관계를 발전시킨 서재필 업적을 선양하기 위해 설립된 동상
워싱턴DC 주미한국대사관 앞 정원에 설립된 이 동상은, 보통 서재필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활동한 것과 달리 워싱턴에서도 미국 시민으로서 한국 독립을 외치며 외교적으로 활동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위치: American University (4400 Massachusetts Avenue, NW) 구내
주소: 4400 Massachusetts Ave. NW, Washington DC 20016
American University
이승만이 한국의 독립을 미국사회에 호소하기 위해 식수했던 나무
이승만은 1943년 4월 8일 오전 10시 아메리칸대학교 교정에서 주미외교위원부, 한미협회, 한국독립운동가가 공동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24주년을 경축하는 기념행사를 개최하면서 한국 벚나무 식수를 추진하였다. 이날 행사에는 300여 명의 한인과 아메리칸대학교 총장 더글러스(P.F. Douglass)를 비롯한 저명한 미국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행사가 끝난 후 이승만은 아메리칸대학교 교정의 하얀 대리석벤치에서 기부한 벚나무를 갖고 자신을 비롯한 필라델피아 독립선언, 조지 워싱턴과 공명하게 한 독립운동가 4명과 함께 기념식수를 하였다. 그리고 이 벚나무의 이름을 '한국 벚나무'로 명명했다.
위치: The Oak Hill Cemetery
주소: 3001 R St NW, Washington, DC 20007
초창기 한미외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
워싱턴 DC 조지타운에 위치한 ‘오크 힐 묘지’에는 1890년에 안장된 한인 이화손의 무덤이 있다. 이화손(Ye Washon)은 대한제국공사관 4대 공사 이채연의 아들로 1890년 10월 12일 워싱턴에서 태어났다. 당시 미국 신문(이브닝월드, 1890년 10월 13일)에 ‘미국에서 태어난 첫 조선 인’이라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으나 생후 2개월 만에 습진으로 사망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공사관 건물주였던 펠프스 가문의 도움으로 12월 18일 조지타운의 가족묘지에 묻히게 됐다.
당시 한국에서는 일 년이 되기 전에 죽은 아이는 족보에 올리지 않아 생후 2개월 만에 숨진 이화손은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 뻔 했으나 대한제국공사관 복원 과정에서 한종수 학예사의 노력으로 국무부 기록에 남아있던 무덤의 존재를 확인하게 됐다. 그리고 지난 2018년 묘비를 찾아 재정비하던 가운데 묘비 뒤에 한글로 새겨진 ‘조선 니화손’이라는 글자가 드러나게 됐다.
미국에서 태어난 조선인 아이의 묘지를 마련해준 펠프스 가문의 사위 브라운(Sevellon A. Brown) 국무부 차관과 이채연 공사의 관계도 흥미 롭고 초창기 한미외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이채연 공사는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 브라운 차관과 함께 참석했으며 한국에 돌아가 한성판윤(지금의 서울시장), 한성전기회사 사장을 역임했으며 이 과정에서 주미공사로 활동하던 당시 맺었던 미국 인사들과의 인맥이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